- 안해수
어머니와 나누어 가지던 우울감이
이제는 온전히 제게로만 쏟아진 까닭일까.
해수의 마음은 하루하루 눅진한 진창 속에 처박혀갔다.
삶은 늘 한순간이었다.
나름 잘 나가던 아버지의 사업은 거대 투자자의 자금회수로 나락에 빠졌고,
이를 못견딘 해수의 엄마는 목을 맸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해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과 어마어마한 빚.
우울감과 체념이 해수를 좀먹어간다.
곱게 자란 그녀는 이 상황이 버겁고 곧게 서지 못하고 흔들리기만 한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
휘청대는 자신이 굳건히 땅에 발디디고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 해수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 블랙 / 이호범
이호범은 끝이 썩었다고 한들 그녀에게 있어 분명한 동아줄이었다.
추저분한 오물밭을 나뒹굴게 되느니
객기를 부려서라도 한 번 매달리게 될.
무채색에 가까운 남자.
해수에게 빚을 독촉하러 온 이호범은 그녀의 처음을 가졌고,
그녀에게 한번 잘 때마다 부채를 탕감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다수, 하나.
자신이 상대할 남자의 수.
이호범의 제안은 그 선택지에서의 선택일 뿐이었다.
해수에게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면서도
그의 빚쟁이 이상의 집착과 파괴적인 애정은 해수에게 역겹기만 하다.
- 화이트 / 서해승
"벌레가 벌써 꼬였으려나..."
"해수 말이에요."
"나 없는 사이에 이상한 거 꼬였을 거 같아."
하얀 물감처럼 나긋하고 깨끗한 인상, 다갈빛 눈동자.
조금만 웃어도 보이는 보조개마저 아름다웠던.
해수의 빛났던 시절의 친구.
한국에서 친 사고로 인해 유학길에 올랐던 해승과 다시 재회해
그녀의 단칸방에서 벌어지는 이호범과의 정사를 들켰을 때,
해수는 더이상 그가 그녀의 착한 친구가 아님을 알았다.
- 골드 / 서무원
"그러게.... 왜 그럴까."
"왜 더러운 걸 알면서도 자꾸 손을 대고 싶을까."
"이런 건 처음인데."
서해승의 형, 서무원.
타인과의 접촉을 불결해하는 결벽증.
해수만큼은 더럽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자꾸 손을 대고 싶어진다.
호기심과 불결함.
서무원은 해수에게 가진 두개의 양가감정을 토로하며
자신의 결벽증을 치료하는 데 일조할 것을 제안한다.
강제는 없었지만 그에게로 몸을 의탁하는 것은
그녀의 의지라기 보다는 상황에 떠밀려서였다.
폭력적인 이호범과 이상성욕자인 서해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사람.
그가 해수에게 바란 것, 해수에게 해온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을까.
블랙, 화이트, 골드.
해수에게 건넨 각자의 카드색입니다.
이 카드의 색이 각자를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두운 세계에서 살아온, 칠흑같이 검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던 이호범.
해수에게만큼은 자신의 추잡한 속내를 숨기고 햇살같은 친구로 남고자 했던 이해승.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지 못했던 서무원.
셋 모두 해수를 최악의 형태로 사랑했지만,
가장 온전한 형태의 사랑을 했던 것은 결국 이호범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의 의지를 잃었던 해수를 그만의 방법으로 다그치고 일으킨 사람.
그녀의 황폐해진 인생에 제멋대로 들어와
어떻게든 자신을 그녀에게 우겨넣고자 했던 남자였죠.
그 방식이 비록 해수 본인에게는 역겹고 싫을지언정.
그만의 비틀린 애정은 곳곳에서 보여집니다.
단칸방에서의 언제나와 같이 폭력적인 정사 후의 협박같던 "같이 살자"는 말.
임신을 시켜서라도 이여자를 옭아매고 싶어하던 찐득하고 음습한 집착.
더운 여름에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냉장고를 꽉 채워두었던 아이스크림,
해수가 단칸방에서도 간직했던 바라 마지 않는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집.
자신의 변태적인 성향을 들키기 싫어 줄곧 숨겨왔던 해승과
결벽증으로 인해 해수의 주변을 맴돌기만 했던 무원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습니다.
오롯이 해수가 좋든 싫든 온 몸으로 부딪혀온 것은 호범 뿐이었죠.
또한 그녀와 제대로 된 미래를 그렸던 것도 호범 뿐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아도
호범은 해수에게 건네진 최악의 사랑중 가장 차악의 사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해수에게 가했던 행동 한톨 후회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해
알뜰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겨드는 사특한 모습까지!
거기에 해수의 상처 또한 보듬기 보다는
아파도 내 옆에서 아프라는 이기적인 소유욕!!
실로 취저였습니다. 암. 이정도는 해야 몽슈님표 남주이지!!
이와는 별개로,
해수와 세 남주들의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남주들의 매력은 제대로 발산되었고
(안경에 존댓말남!!! 햇살 외모랑 정반대의 음습한 변태성욕자라니!!)
보는 내내 흐뭇하게(!) 읽을 수 있었던,
비틀린 망한 사랑을 치열하게 전개하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단 2권에 이 세 캐릭터들이 공평하게, 확실히 자리를 잡을 수 있는거죠??
이건 몽슈님의 필력이 다한겁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마지막까지 이 작품을 읽고 덮으면서도
피폐물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었는데요.
해수가 이미 망가져버린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상당부분 자신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우울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
이 미친 사랑들을 비교적 담담한 태도로 감당했기 때문에
분위기가 어둡거나, 무거워서 못견딜 정도는 아니었던 것같습니다.
언제나 삶에 대한 큰 의지와 놓지 않았던 희망이 있었던 해수였고,
호범에게 빚청산을 댓가로 몸을 열었을 때도
그로인한 자괴감이 들었을 지언정 빚 청산 이후의 자유를 꿈꾸었죠.
또한 서해승의 감금과 변태적인 플레이를 견디면서도
나름의 협상으로 틈을 만들어냈고,
그 틈을 이용해 서무원에게 구함을 받게 되었고요,
또한 서무원과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에게 협조해 살아남으려고 했었죠.
이정도면 해수는 마성의 여자 내지는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가 있는 똑쟁이 당찬 여주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쁘고 몸매 좋지만
삼재였을까.. 평생의 악운을 다 갖다 썼을까 싶을만큼,
세명의 나쁜 놈을 만나 최악의 사랑만을 받았던 해수.
정말 고생 많았다...
세 남주들이 하나같이
매력 넘치고 재력도 넘치고 집착/소유욕 MAX, 섹텐 MAX 맛집찾으시면,
여깁니다 여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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