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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조선에 방문한 신페이를 데리고
내내 술독에 빠지듯 하던 사촌 형 다이치가 권유하여
마지못해 들게 된 유곽. 초록동색.
그곳에서 그들의 술자리에 동석한 기생 하나를 만납니다.

선이 얇아 한 대 치면 고꾸라질 것 같은 체구에,
단정한 생김과 정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눈길을 끄는 여자.

- 매국 中

기생으로서의 교태도 아양도 없는 이 여자.
신페이는 이 조선인 기생에게
가차없이 냉소어린 말을 퍼붓습니다.

그러고 잠들면서도
기생에 대한 궁금증으로 마음 한 켠이 무지근했던 그는,
초록동색에서의 이튿날.
기생의 머리를 올리는 조건으로 거금 800엔을 지불하고
그녀의 시한부 "서방님"이 되어 이 초록동색에 머물게 됩니다.

기생과의 초야를 치른 신페이는 기생에게 묻습니다.

"어떻던가. 나와 통한 것 말이지."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 매국 中, 신페이-여진

어떠한 감정의 조각도 없이 내뱉어진 기생의 대답.
신페이는 그날을 기점으로 매일 밤 기생과 밤을 보냅니다.
기생과 보내는 나날들이 계속될 수록
신페이는 딱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여자에 심술이 나고,
그녀를 연모하였던 남자의 등장에 기분은 급격히 저조해집니다.

게다가 우연히 방문하게 된 "조선관"에서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는
기생의 머리 올린 모습의 엽서를 보고는
그로서는 하지 않을 법한 감정이 들고 맙니다.
소유욕.
그리고 그로인해 꺾인 그녀에대한 연민.

한 때의 유희라고 치부했던 기생과의 시한부 서방놀음에,
신페이는 점차 무겁고, 진득한 감정이 깃들고 마는 것을
부정하고 또 부정해봅니다.

그러던 차,
동척에 발생한 테러로
신페이는 사촌 형 다이치를 잃게 됩니다.
그의 이해가지 않는 수사방식과 어이없는 죽음.
일본인으로서 위험한 수위의 발언을 쏟아내며
조선에서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던 아베 다이치.
그러면서도 황국신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던 그.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끝에
결국 그의 노선을 선택 했음을 신페이는 직감하게 됩니다.

왜 소원을 취소하겠는가.
박쥐에서 불나방으로 전락한 그가,
죽었다고 해서 당최 조선의 독립을 안 바랄 수가 있겠는가.

형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노선을 바꿔 탄 것이다.

<담>을 넘어 이제 조선으로.

- 매국 中

그리고
지금껏 인생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신페이의 가슴 속에도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변화가 찾아옵니다.

사랑에, 인생에 냉소적이었던 그에게
연모의 감정이 생겨났고,
이해하지 못했던, 파괴적이며 폭력적이라 여겼던
피지배국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에 점차 공감하게됩니다.

여진.
첫 만남에는 기억할 바 없다 여겼던 기생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그 뜻이 궁금해지는 신페이.
이름 뜻으로 기생은 지진이라 답합니다.

시한부 서방 놀음이 끝나고
지진이 잦은 그의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한 신페이는,
그의 내면에 강한 울림으로 남은 여진이 그를 한동안은 뒤흔들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그것이 그가 감내해야 할,
그녀를 위한 결말이라 여기면서...
그렇게 조선을 떠나려던 신페이의 앞에
또다른 테러의 소식이 들리고,

신페이는 다시 경성으로 향합니다.
오롯이 그녀의 안위에 대한 걱정만으로..
그가 그리도 비웃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그 사랑의 안녕을 바라면서.


- 언어유희

이 작품,
[매국]은 제목부터 동음이의의 언어유희가 깃든 작품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매국(賣國)에 덧대어진 매국(魅國),
사로라는 카페에서 사로(思路/邪路/死路)라는 단어로 이어지던 신페이의 고민.
기생(妓生)에 기생(寄生)하던 생명.
모던걸 행세를 하는 무늬만 모던걸이었던, 모단(毛斷)걸.

읽는 내내 유쾌한 장면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거의 없지.. 요??)
동음이의어에서 느껴지는 여러 의미들을 되새기며
그 뜻을 헤아리는 것은 이 작품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 감상.


저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일제 강점기에 난 사람들은 당연히 일본을 미워해야 하고,
일본에 대한 저항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단순히 항일운동 안한 사람들은 나쁘고,
모든 조선인이 일본을 싫어했을거라는 생각은
그 시대를 살아오지 못하고 결과만을 바라본 이의 오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에 반하는 행위인 친일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내가 일제 강점기의 한복판에 태어나서
일본 순사들이 총검을 차고 당연히 활보하고,
소학교에서 히라가나를 배우며
일장기 앞에서 천황에 대한 기도를 하는 것이 일상인 시대에
일본에 저항하던 독립투사들이 던진 폭탄에
지나가던 나의 가족이 다치고..
그로 인해 평온했던 내 인생이,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다면,
그때도 나는,
과연 이 나라의 독립을 외치고
내게 딸린 가족들에게 곤궁함을 강요하며
그들을 사지로 내몰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 종종 들었습니다.

과연 그 시절에 나고 삶을 영위하던 사람에게
일본에 반기를 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린시절,
티비를 틀면 나오는 뉴스에서 보여지던,
화염병이 난무하고,
이를 저지하는 공권력과 학생시위대의 모습들이
동시대를 살았지만
편안히 안방에 들어앉아 귤까먹던 초등학생에게는
그야말로 티비속 세상이었던 것처럼
그네들에게도 항일, 독립운동은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일에 대한 신랄한 독설을 퍼붓던 신페이에게
일갈했던 호정의 말이 떠오릅니다.

"조선인들은 그렇게 쉽게 정체를 밝힐 수가
없단 말이다.

오늘은 친일을 하고 또 내일은 반일을 하지.
어떻게 친일과 반일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감히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느냔 말이야."


- 매국 中, 호정.

대개의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은 호정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살아왔을 겁니다.

작중의 인물들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독립을 바라는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던 여진.
그들을 고문하고 심문해오며
그들의 신념이 처참히 짓밟히는 과정을 보아온 신페이.
겉으로는 친일을 하고, 왜년이라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물밑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음희.
친우와 사랑하는 이의 위험을 알면서도
섣불리 저지하지도 그를 응원하지도 못했던 다이치.

모두, 각각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일 뿐이며,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던 시대를 살면서
각자가 겪었던 경험과 신념으로,
그 나름의 선택을 할 뿐입니다.

체념을 거듭하며 삶을 관조하기만 했던 여진이
결국 결단코 몸담지 않으리라던 일에 가담하게 되었고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감정적인 그의 사촌 형을 비웃던 신페이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굴복하고 타인을 염려하여
그로서는 하지 않을 무모한 일에 뛰어듭니다.
응당 배운 신여성이라면 독립에 투신해야한다는 음희가
결국 여진에게 더이상 독립을 종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조선과 일본, 조국과 사랑.
그 사이에서 고민하던 다이치는 결국 노선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또한 그들의 경험이고 신념이자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에 대의를 적용하고 윤리적 잣대를 댄다면
어떠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나,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갈 뿐인 한 인간들일 뿐이었고,
이를 평가하는 것은 훗날의 누군가겠죠.
그들은 그저 그네들의 인생에 충실했을 뿐일 겁니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를 살아내며 지금에 충실할 것.
자신의 선택으로 달라질 인생에 후회를 하든 안하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내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며 살아내는 것.

그러다보면,
더 없을 사랑이 다시 찾아 오기도 하며,
얼음과도 같은 신념이 산산히 부서져 내리기도 할 겁니다.
언젠가는 레몬과 같은 새금새금한 열매같은
군침도는 사랑도 만날 것이고,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 생각지 못한 누군가에게
구해짐을 받을 날도 올 겁니다.

그 시대를 그들의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낸
여진과 신페이, 음희와 다이치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호시절이 아니어서 존재만으로도
슬프고 아픈 사랑을 한 그네들에게..
(물론 그시대의 그들은 그리 생각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않고 힘껏,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낸
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이만큼 살아오고 나서야 느끼게 됩니다.
그 시대의 혼란스러움과 일제가 억지로 비틀어버린 흐름에서
어떻게든 역류하여 그 흐름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의
그 의기가, 기상이 참으로 범상치 않았던 것임을.
한편으로,
그 범상치 않은 의기를 가진 이들 또한
평범한 인간들이었음을.
그들에게도 사랑이, 연모가, 미움이, 애증이 존재했음을.

그렇기에 그 어두운 시기에 막연한 희망만으로,
광복이라는 빛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선택"을 한 그들의 인생은
당연히 우리 후손들에게 인정받고,
대대로 기억해져야 할 것입니다.

저도 어쩔수 없는 한국인으로,
가슴 속을 철렁케 했던 구절을 마지막으로 남깁니다.

오직 빛을 찾아다니는 벌레.
그 벌레들이 죽어갈 때마다 읊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대한 독립 만세."

- 매국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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