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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의 릴리 블룸은 

보스턴의 한 건물 옥상에 올라

12시간 전 있었던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의 일을 떠올립니다.

 

아버지의 추도사를 하기 싫다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그저 그의 좋은 점 다섯 가지만 말하라는 주문을 했고,

릴리는 아버지의 장점따위는 말하지 않은 채,

추도사를 대차게 말아먹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외적으로는 존경받는 인사였으나,

가정 내에서는 그저 아내 학대범이었고 

그녀의 첫사랑의 마지막을 산산이 부숴버린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릴리는 그녀의 행동에 불편함과 후련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유년시절의 악몽을 마무리했다는 안도와 

남자로서 최악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러나 분명 아버지로서는 자신의 양육에

최선을 다했던 이중적인 아버지에 대한 애증.

 

그리고 아버지를 끝까지 놓지 못하고 

그의 허물을 숨기기에 바빴던 어머니.

 

아버지를 온전히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한 감정을 갈무리하는 릴리의 뒤로,

그녀가 있는 옥상에 한 사람의 방문객이 등장합니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탓에

옥상에 널려있던 의자를 발로 차대며 분노를 발산해대는 남자. 

라일 킨케이드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라일은 매력적인 남자였고,

직업 또한 번듯한 신경외과 레지던트였습니다.

릴리는 불현듯 나타난 이 남자와 '벌거벗은 진실'을 얘기했고,

그들은 그들 인생에 발생한 좋지 않은 기억을 털어놓으며

서로에게 깊은 끌림을 느낍니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으로 연애관이 매우 달랐던 두 사람은

첫 만남을 애매한 호감만 남긴 채 끝맺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릴리는 우연히 라일을 만나게 되고, 

그에 대한 호감을 확신합니다.

라일 또한 릴리가 만나왔던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의미임을 깨닫게 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라일과 릴리는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특별함을 인정하고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라일과 릴리는 저녁을 만들며 고급와인에 취한 둘은 

사소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라일은 오븐에 있는 그릇을 맨손으로 움켜쥐었고,

뜨거워서 놓친 그들의 저녁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라일은 곧장 찬물로 데인 손가락을 식혔고,

릴리는 그 모든 것이 재밌게 느껴져 웃었습니다.

 

중요한 수술을 앞둔 라일은 손가락의 상처에 예민했고

릴리는 취했을 뿐인데.

 

라일은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릴리를 밀쳐버립니다.

릴리는 밀려난 힘에 이마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찰나 일어난 일에 릴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라일은 아버지와 달라. 그럴리 없어.

라일은 그렇게 무신경한 쓰레기가 아니야.

 

진심으로 사과하며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는 라일을 보며

릴리는 어머니를 학대했던 아버지와 라일은 다르다고 되뇌입니다.

그녀는 라일을 무척 사랑했으니까요.

심지어는 그의 다친 손가락을 보며 웃었던 자신을 자책합니다.

그의 중요한 수술이 멀지 않았는데...

 

한편, 힘들었던 10대 시절을 함께 이겨냈던 첫사랑

아틀라스와 보스턴에서 재회한 릴리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방문하게 되고, 

릴리의 아픈 과거를 알고 있던 아틀라스는 

그녀의 부은 이마와 라일의 붕대감은 손을 보고 분노하여

라일과 몸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릴리는 현재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과거로서 아틀라스에 대한 사랑을 정리하고자

아틀라스에게 완전한 이별을 고합니다.

그런 릴리가 아틀라스는 불안하기만 하고,

아틀라스는 릴리에게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깁니다.

 

아틀라스의 불안과는 달리 

릴리와 라일은 행복한 연인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범죄나 가스라이팅에 대한 사건이 회자되는 요즘,

꼭 한번은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주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비단 릴리와 그녀의 엄마가 당한 신체폭력 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언사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로 강요되는 많은 것들.

 

어쩌면 불편한 주제이지만

부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를 관통하는 주제이기에

나를 둘러싼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끝이야"

라는 제목은

당연히 릴리와 라일이 나눈 대화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정 폭력을 직접적으로 당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내내 방관자로 지켜보며 자란 릴리에게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로 나타났던 라일과의 대화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대화의 대상은 틀렸습니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 "우리가 끝이야"라는 제목은

정말 용기있고 위대한 한마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릴리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나를 아프게 한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아직도 무척 사랑하는 내 남자는

이토록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과연 지금 이 행복을 내 손으로 깨트릴 수 있을까요.

 

어쩌면 릴리의 결정은 그녀를 위한 결정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게 된 또 하나의 존재, 딸을 위한 것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릴리 혼자였다면

그 결정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거나,

또는 아주 뒤늦게 이루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릴리가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사랑한다는 한마디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감내하며 살았을지..

 

왜 항상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납니다. 

사랑하니까.. 

라는 이유로 얼마나 하지 않아도 될

희생을 감수하는 이들이 많은지..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의 플롯을 따르고 있었지만

읽다보니 유년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기억에도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나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고 만

한 여성의 성장기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녀 혼자서 그런 성장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성장에는 아틀라스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은 없었지만

올바른 부부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란 릴리에게 

아틀라스는 그 공백을 메꿔주었던 존재였을 겁니다.

 

서로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고

방향을 잃고 흔들릴 때 옆에서 붙잡아주는,

릴리 자신을 곧이 곧대로 받아주는 사람.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이렇게 진지하고 솔직해야한다는 것을

아틀라스와의 관계를 통해 릴리는 배웠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노숙인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단순한 릴리의 방황기였을까? 싶었지만,

아틀라스 역시 성인과 미성년의 경계에 있었기에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였을 뿐이었고, 

아틀라스 역시 피해자 였을 뿐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도 나의 선입견에 대한 반성이 일었습니다.

아틀라스라는 사람의 외면이 아니라, 

그 내면을 봐주었던 릴리를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노숙인 꼬맹이였던 아틀라스가 

보스턴에 번듯한 레스토랑을 가지고,

인테리어로서 큰 나무를 중앙에 놓았던 것을 읽고

릴리와 아틀라스의 예전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어렸던 릴리뿐만 아니라

아틀라스 역시 둘의 대화에 큰 위로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릴리가 아틀라스로 인해 힘든 시간을 버틴 만큼,

아틀라스 역시 그랬을 겁니다.

 

"저기 나무 보여?"

나무 가운데 유독 키가 큰 오크나무가 한 그루 있었어요.

"저 나무는 스스로 자랐어."

"대부분의 식물들은 잘 자라려면 보살핌을 많이 받아야 해.

하지만 저 나무처럼 다른 누가 아닌

자신에게만 의지해서 잘 자라는 강인한 식물도 있어."

 

각자의 인생에 닥친 힘든 상황에도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제 인생의 키를 놓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성장해 단단해진 두 사람, 

 

그리하여,

이제 서로를 만나게 될 준비가 된 두 사람.

 

인생의 힘든 시기를 잘 견뎌온

그들의 앞날이 항상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릴리, 이제 그만 헤엄쳐도 돼. 

우린 드디어 해안에 도착했어."

 

본 서평은 '위즈덤 하우스'가 로사사에서 진행한

<우리가 끝이야>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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