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그날들/윤제이/종이책
- 남주 : 서윤
미국 스탠퍼드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유명 애널리스트, M사 데이터관련 팀장.
업무에는 냉정하며 철저하고, 연인에겐 더할 나위 없이 다정다감한 카리스마 넘치는 볼매남
- 여주 : 정원주
K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 활동중 스폰서와 결혼, 이혼녀.
참고 인내하고 버티는 걸로 아픔을 삭여내는 상처녀
- 출처 : 리디북스
- 열 여덟, 열 아홉의 그날들.
윤이 원주의 옆 집에 이사 온 것은 그녀가 고 3을 막 올랐을 무렵이었습니다.
이삿짐 트럭이 들어오지 못하는 좁고 가파른 달동네의 비탈길을 오가며 묵묵히 짐을 나르던 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말을 붙여온 원주에게 윤은 생 날라리라며 퉁박을 줍니다.
날라리인 자신과는 다르게, 학교에서 인정받는 착실한 범생이 윤.
둘은 원치 않게 물려받은 가난이 죽도록 싫었고, 이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이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팔자라...... 그건 어떻게 펴는 건데."
"내가 봤을 때 대한민국의 여자는 새 인생 살 기회가 한 번 더 있거든.
그게 뭔지 알아?"
"몰라"
"바로 결혼할 때 돈 많은 놈을 무는 거야."
....
"아아. "
"왜. 들어가게?"
"가서 공부해야지. 너는 남자 꼬드기고, 나는 공부로 인생 리셋."
"......그래. 우리 둘 다 파이팅이다."
- 그날들 中
철딱서니 없다 여길 법한 원주의 말에도 윤은 비난의 기색이 없이,
그녀가 찾아낸 삶의 목표를 존중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녀는 새벽녘의 빛처럼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렇게라도 벗어나고픈 가난의 무게가 자신도 짓누르고 있기에,
윤은 원주에 대한 마음이 커져감에도
자신은 그녀의 그런 사람이 될 수 없기에 섣불리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옆집 이웃이 된 그들,
그와 그녀 사이에는 수많은 [그날들]이 존재했습니다.
술취한 아버지가 착각할 만큼 도망간 어머니와 닮아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욕설을 고스란히 받아내던 날,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대문 밖에서 떨던 원주와 그 옆을 지킨 윤.
담배 한개피씩 피워내는 연기 사이로 나눴던 둘의 시렸던 겨울 날.
담배 검사를 하는 교문 앞에서 원주의 담배를 윤이 자신의 가방 속에 숨겨주고,
답례로 원주가 김치를 가져가져다 주던, 묘한 기분이 오갔던 그날.
그네들의 아버지들의 생사가 갈렸던 날,
건조한 눈으로 상주를 맞이하던 윤 대신 눈물을 쏟아내던 원주.
그리고 포기해야 했던 원주가 인정받았던 단 하나의 재주. 그림.
마침내 윤이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열화와 같은 감정을 터트려내던 날,
윤의 원주에 대한 마음을 가시돋힌 말로 위장하여 고백할 수 밖에 없던 그날.
그리고
그 고백을 알고서도 윤을 위해, 서로를 위해 위악을 떨어대었던 원주의 날들.
"잘 살아. 정원주. 행복하게."
그리고 철거 결정이 난 그들이 살던 달동네에서
유치한 불행겨루기 끝에
마지막으로 윤이 건넨 다정한 인사. 그리고 다정한 입맞춤.
그렇게 담담하지만 무력한 이별을 하던, 그날들..
원주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그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버거웠기에.
그들은 그렇게 약속도 기약도 없는 이별을 합니다.
- 서른하나, 서른 둘의 그날들.
당시의 그녀에게 너무도 무거워서 밀어내었던 윤의 고백은
이제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꿈이 되어 나타납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 말할 수 있는 결혼을 한 지금에도.
그녀가 어린시절 생각한 조건에 부합하는 결혼이었지만,
7년의 결혼생활 동안 그녀는 몰랐던 사실을 절감합니다.
그네들의 세계에서 살면서 '급'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모두 수용하고 감내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그녀를 죽이고, 낮추는 나날들이었습니다.
남편의 외도까지도.
남편의 외도 대상인 내연녀를 독대하고 나서는 카페에서
원주는 13년만에 윤을 우연히 마주칩니다.
"헛똑똑이."
내연녀와의 대화를 들었는지
서늘한 눈매로 예전과 같이 날카로운 말을 남기고 돌아선 윤.
그들의 [그날들]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윤은 어른이 되었다 여겼으나
원주를 우연히 만나게 된 순간,
때아닌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가버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신답지 않은 분노, 좌절, 치기, 욕망.
이 모든 것이 향해 있는 원주를 향해 이제는 성큼 걷기 시작합니다.
그날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빛났던 정원주.
그러나,
그 빛이 꺼져버린 채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지금의 정원주.
13년간 치열하게 살면서도,
무시로 떠오르고 침잠했던 그녀에 대한 기억이,
잊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나 잊지 못했던 그녀를 앞에두고
윤은 이제 그의 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것 봐. 정원주. 네가 다시 나를 소년으로 만들었어."
그의 잃어버린 유년, 사춘기, 그리운 그날들.
거기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기에.
학교마다, 반마다 한두명씩 있었던
깻잎머리에 똑딱핀을 꼽고 치마를 접어입고 껌을 씹어대던 여자애.
그리고
전교에서, 나아가 전국에서 순위권인 공부 잘하는 범생이 남자애.
이 엮이기 힘든 둘이 엮이게 된 공통점은 가난이라는 피할 수 없는 굴레였습니다.
그럼에도 어린 그들은 각자의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냅니다.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도,
자신을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게 하는 부모에 대한 원망도 할 새 없이,
비빌 언덕도 빽도 없는 그들이 이 녹녹치않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미래를 꿈꾸면서 말입니다.
재능도 꿈도 사랑도 접어둔 채,
그에 대한 아쉬움도 느낄 새 없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눈부신 청춘에 끼어든 풋사랑을 모른척 해가며, 차마 내색하지 않으며
그저 눈앞의 삶에 고군분투했던 그들..
기어이 가난을 벗어날 기회가 와서 잡았고,
윤과 원주의 선택이 옳았던 옳지 않았던, 그들은 어릴때 결심했던 것처럼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 성공하긴 합니다.
단지 그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그들의 삶,
특히 원주의 삶이 참 위태롭고 안타까웠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던 윤과는 달리
결혼이라는 형태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벗어 던진 가난은
또 다른 굴레가 되어 그녀를 옥죕니다.
질기게 붙잡고 있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하루하루 말라가던 그녀를 만난 윤이 느낀 분노는
잘 지내지 못했을 그녀의 과거에 자신이 없었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 안타까움으로 그녀의 삶을 전부 껴안고 싶지만
윤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온전히 그녀를 가지기 위해,
그녀의 의사로 그에게 다가오기까지 차분히 기다려 줍니다.
분명히 윤도 힘든 순간과 무너져 내렸던 순간이 있었을텐데..
이렇게 혼자의 힘으로 강하고 단단해진 윤이라는 남자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남자가 정말 입지전적인 인물이자 진국인 것...!!
연상연하(한살차이지만)에
그녀의 이혼한 상처와 자격지심까지도 모두 이해하며
그녀를 기다려주고 존중해주었던 어른 남주,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을 내리고 내 여자에게는 한없는 이해심을 가지지만
그녀와의 관계에서 어떤 불순물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한발 물러서서 그녀를 기다려줄 줄 아는 남자.
집 비밀번호 3141592.(원주율....)
도어락 비밀번호조차 원주에 대한 사랑이었던 이 이과감성 남자!
심지어는 헤어져있던 13년간 아무도 안만난 동정남!!
(여기서 원주가 부담스러운 감정도 마구 이해가 갔어요.. 너무...부담스러운데 너무 좋아...ㅠㅠㅠ)
윤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오윤 서윤...
윤이들은 왜들 다 매력적인걸까요....
심지어는 그녀의 개차반 전남편을 대면하고도
그 분노의 대상을 헛갈리지 않아 더더욱 멋졌던 서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둘을 그린 짧은 외전이지만,
외전을 읽다보니 서윤 역시 원주만큼이나 외로웠음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서
이 잘난 남자가 안쓰러움 혹은 가여운 모습까지 보여
더더욱 매력을 더해버렸습니다.
"예쁘지, 그럼. 내가 아는 원주는 모두 아름다워."
평생을 한 여자만 바라보았던 이남자, 서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 하나의 원주랑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