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미온의 연인/김수지/종이책
- 남주 : 지수혁
T그룹의 후계자. 그에게는 사랑스러운 연인이 따로 있고, 결혼은 일생일대의 비즈니스 일 뿐이라고 여긴다.
사랑 따로, 결혼 따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잘난 남자.
- 여주 : 김유민
W무역 회장의 금지옥엽. 젊은 화가로서 나름의 인지도를 쌓고 있다.
꽤나 사교적일 때도 있지만, 자세히 지켜보면 보통 사람과는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인다.
※ 다수의 스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미온의 연인>
- 수혁시점-
"솔직하게 말하지.
나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 있어.
당신과 결혼한다고 해도 정리할 생각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껴.
똑똑한 여자라면 무슨 말이지 알겠지?
난 이 결혼에서
사업적인 의미 이상은 찾지 않을 거야."
.....
"그 말은 이 결혼에 '감정'이
없을 거라는 말인가요?"
- 수혁/유민
정략결혼임을 분명히 밝힌 첫만남.
그 여자의 첫인상은 세상 물정 모르는 화초류였다.
이 결혼에 애정따위는 한톨도 없을 거라는 나의 말에
그 고고한 자존심을 상해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고조된 음성으로 물어왔다.
이 결혼에 감정이 없을 거라는 내 말에
망설임없이 동의하는 여자.
생각보다 결혼이라는 사업이 꽤 수월할 것 같다.
몇 번의 기묘한 느낌을 주는 그 여자와의 만남 후
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렸고,
그 후에도 나는 변함없는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여자는 동거인, 룸메이트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고,
나의 연인은 조금 우울했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함께 하고 있다.
그 여자를 조금이나마 의식했던 건
.. 그래, 냉장고였다.
그 빌어먹게 집요하리만치 정돈된 그 냉장고!
여자는 냉장고에 관한 까칠함을 제외하면
그에게 아내가 있는 삶의 편리함을
완벽히 제공해 주었다.
집 안에서의 식사도 그랬지만,
매일 그녀가 싸 주는 도시락 때문에
그는 이제 회사, 혹은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 미온의 연인 中
그리고... 음식!!
밥에다 뭐 탄거처럼 왜 이여자의 음식이 맛있는거지??
다른 음식은 입에도 못댈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기묘한 이 여자와의 신경전은
항상 내가 여자의 음식에 굴복하는 식이었다.
나름의 안정적인 두집생활을 하던 어느날,
나의 결혼으로 인한 내 연인의 질투는 점점 심해졌고,
3년간의 내 사랑은 그녀의 이별통보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날, 나는 이별의 분노를 그 여자에게 쏟아냈다.
폭력적인 정사의 끝은 생각보다, 아니 정말이지 너무도 좋았다.
그 뒤,
이 여자와 있을 때 나는
대화를 돌려 말하지 않아도 되었고,
원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말해도,
애새끼처럼 유치하게 굴어도 상관없었다.
그 여자와의 시간은 허례허식이 없었다.
단순했고, 편리했다.
그래..
나의 취미는 [김유민]이 되었다.
그 여자로 인해 부서져버린 과거의 남자를 만나고,
그 여자의 병명을 듣기 전까지는...
[안면 인식 불능증]
얼굴을 통한 타인의 감정을 읽어낼 수 없으며,
뛰어난 두뇌와 예민한 기질 탓에
타인의 감정에 공감조차 하기 힘든 여자.
지금까지 나와 보낸 시간은..
그 시간 속에 너는...
그동안 내가 느꼈던 이질감은 이것이었다.
나를 보고 있지만 때로는 보고 있지 않았던 너의 눈.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전적인 의미만을 읊던 여자.
텅빈 금고 같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나야말로 너의 구원이었다니..
이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빠진 게 아니야.
- 수혁
<얼굴 없는 연인>
- 유민시점-
'종잡을 수 없는 남자.'
쉽게 말해 그는 일종의 이상한 퍼즐 같았다.
유민은 매우 어려운 퍼즐 조각들을 끌어 모아
맞추는 데 능숙했지만,
그 남자처럼 끝을 알 수 없는 퍼즐은 처음이었다.
- 유민
분명 이 결혼에는 감정이 없다고 했던 남자였다.
그런데 그의 연인과의 이별을 기점으로 남자가 변했다.
나를 한시도 놓지 않으려하고,
자꾸만 나를 돌본다.
어느 순간에는 격하다가도, 냉정하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남자는 나의 잔잔한 세계를 자꾸만 흐트린다.
그래,
나의 신성한 냉장고한테 그런것 처럼..!!!
나는 타인이 내게서 바라는 애정을 절대 채워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미 나를 사랑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부서지는 것을 봐왔다.
부모님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 했던 남자.
그들이 원하는 공백을 채워줄 무엇도 내게는 있지 않다.
그리고 더이상
나도 내가 이해할수도 없는 감정에 대한
노력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하는 것은 [흉내]에 불과하니까...
"네가 왜 나를 보며 헷갈려 하는지 알아?
네가 단면만 보니까 그런거야.
...
넌 머리, 몸통, 사지를 나눠서 생각하지?
팔 한쪽 보고 이게 지수혁이구나, 했다가
다리 한쪽 보여 주니까 모양이 다르네, 하며
어리둥절해하는 꼴이라고."
- 수혁
극단적인 비유지만,
솔직히 뜨끔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나는
그런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보지 않으면
나는 그 무수한 사람들을 대할 자신이 없다.
남자는 이렇게 나에 대해서
종종 꽤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곤 했다.
곧 사그라들 열이라고 말하며
그 반대의 열기를 띠고 있던 남자의 말에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 버렸으면 좋겠어.
1년이 1초처럼,
10년이 하루처럼.
내가 널 안고 있는 사이,
세월이 다 흘러가 버리고,
눈 뜨고 보면 우리 둘 다 팍 늙어 버린 거야.
이제 남은 건 우리가 나란히 손을 잡고,
함께 숨을 쉬고 있다가......
같은 관게 같이 묻히는 것뿐이지.
- 수혁
보통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남자는 이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그래도 종말이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나를 사랑하는 게 괴로운 남자.
그러면서도 행복해하는 남자.
나는 이 남자에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혹시 울고 있는 그의 앞에서 웃고 있지는 않겠지?
남자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이 남자를 데워줄 만한 열은 내게 없다.
그럼에도..
이 남자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미온의 연인.
두 남녀의 온도차를 극명히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둘 모두 "미온"으로 시작했지만,
남자는 펄펄 끓는 온도가 되었고,
여자는 그저 미온인 상태.
그 온도차에 절망하지만 여자를 놓을 수 없던 남자는
여자로 인해 행복하지만 또 불행합니다.
그러나
저는 수혁이 그 자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하는 사랑이 완전히 외사랑인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단지 그들의 마음이 데워지는데 드는 시간이 다를 뿐.
수혁이 유민을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부딪치고 두들긴 결과,
유민이 굳건히 지켜내고 있던
견고하고 안정적인 그녀의 세계는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녀가 으레 해왔던 이성적인 접근이 아니라,
남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결심했으니
그의 노력은 영 허사는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게 수혁의 온도가 변하지 않는 한,
옆에 있는 유민의 내면의 온도 또한
조금씩 달라져 감에 따라,
이 둘의 세계는 더욱 견고해질 겁니다.
유민의 [다름]을 인정해주고 노력하는 수혁과,
수혁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 유민.
타인과의 [다름]을 가졌지만
결국은 타인과 다르지 않는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의 연애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의 열기가 다른 한쪽으로 전이되는...
연애란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둘다 안쓰럽다는 느낌 없이
외전까지 흐뭇하게 감상했습니다.
수혁의 빈정거림에도 세상진지한 유민의 답변이라던가..
핀트가 나간 유민의 직설화법에 당황하는 모먼트들.
요런
유민의 무심AI화법+수혁의 안달 포인트가
참 재미있었는데요,
요리를 화학식으로 풀어내는 유민의 독창적인 요리해석법에
꼭 "오늘만 사랑한다는 거짓말"의 여주,
자온이랑 만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요리 좀 한다는 여주 둘이 만나면 어떤 콜라보가 나올지...!!
어디 유명 한정식 정도는
씹어먹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수혁에게는 연정을 품다, 감히의 남주
선재를 소개시켜주고싶네요.
둘이 술이라도 한잔 하라고.
물론 그 오만한 남자들은
티 하나 안내겠죠??
+
그리고,
수혁의 비서에게서 왜 김루스의 향기가 나는거죠...?
무거운 주제였지만 결코 쳐지지 않았던,
그런 연인들의 이야기였습니다.